[한국 장수브랜드-2] 농심 신라면, 4명이 열달 간 하루 6그릇씩 맛보며 개발
“‘辛라면(사진)’으로 하지.” 1986년 농심 신춘호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.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. 얼마 전 경쟁회사에서 사람의 성(姓)을 딴 라면을 내놨다가 문중의 항의를 받고 제품을 중단한 적이 있었기 때문. 또 마케팅 담당자들은 “오너의 성을 딴 라면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”며 말렸다. 그러나 신 회장은 “우린 ‘매울 신’ 아닌가”라며 밀어붙였다. 당시 신참 연구원으로 신라면 개발에 참여했던 농심 최호덕(49) 연구개발실 부장은 그해를 쉴 새 없이 라면 국물과 면을 먹으며 보냈다. 10.5g, 한 숟갈 분량의 스프에 어떻게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 맛을 담을 것인가가 숙제였다. 매운 맛이 너무 날카로워도 안 되고 단맛과 구수한 맛이 조화를 이뤄야 했다. 청양고추는 맛이 너무 강해 제쳐놨다. 산지와 생산 시기, 건조 방법이 다른 20여 종의 고추를 다 실험했다. 그냥 고춧가루로만 만들면 텁텁했다. 고민 끝에 육개장 고춧가루를 기름에 볶는다는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. 볶은 고춧가루와 그냥 고춧가루, 그리고 고추를 직접 농축시켜 만든 농축 엑기스 3가지를 섞어 입에 착 붙는 배합의 매운 맛을 찾았다. 라면 하면 지방과 탄수화물만 많다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쇠고기를 이용해 국물을 내기로 했다. 면발도 쫄깃한 식감을 위해 기존의 사각형에서 원형으로 바꿨다. 연구원 4명이 하루 30여 회, 한 번 먹을 때 5분의 1 그릇을 시식하는 과정 끝에 그해 10월 신라면이 태어났다. 된장과 간장 맛이 주였던 라면시장에 첫 등장한 매운 맛 라면이었다. 난관은 또 있었다. 식품위생법에 제품 명으로 한자나 외래어를 쓸 경우 한글보다 작아야 한다는 규정이었다. 이에 농심은 ‘辛’자를 크게 쓰게 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를 거듭했고, 이듬해 규정 변경까지 이끌어냈다. 소비자들의 입맛은 세월 따라 변한다. 농심 이정근 마케팅 팀장은 “1000여 명의 모니터 요원에게 수시로 의견을 물어 몇 년에 한 번씩 배합을 미세하게 조정한다”고 공개했다. 86년 당시 만들어졌던 것보다 지금의 신라면 맛이 전체적으로 진해졌다고 한다. 외환위기 때 매운 맛의 강도를 눈에 띄게 높인 적이 있다.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더 매운 맛을 찾는 소비자들 때문이었다. 10년 만에 닥친 이번 불황에 또 한번 매운 맛을 높여야 할지를 놓고 고심 중이다. 신라면은 출시된 뒤 88년부터 21년 동안 1위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. 지금까지 180억 봉지가 팔렸다.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 에베레스트를 18만6483번 왕복하는 양이다. 국내에선 지난해 37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, 올해도 매출이 10% 늘어날 전망이다. 70여 개국에 수출도 한다. 최지영 기자